1928년, 한 세균학자가 휴가를 다녀와 보니 실험실 배양 접시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그 곰팡이 둘레만 세균이 자라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 여기서 항생제 페니실린이 나왔다. 그 뒤 수십 년간 항생제는 감염병을 무력화하며 '기적의 약'으로 불렸다. 그런데 오늘날 병원에서는 정반대의 걱정을 한다. 한때 잘 듣던 항생제가 점점 안 듣는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생긴다. 세균이 위기에 몰려 '약에 맞서도록 스스로 변했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흔한 뉴스는 실은 진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교실이다. 이 글은 그 이야기를 다루는 학문, 진화생물학을 본다.
안 듣던 약이 왜 다시 안 듣게 되나?
세균 한 마리가 약에 맞서 변신하는 게 아니다. 열쇠는 '집단'과 '변이'에 있다.
수백만 마리 세균 집단 안에는 원래부터 유전적 차이가 다양하게 섞여 있다. 그중 아주 일부는 우연히 항생제를 견디는 성질을 이미 가지고 있다. 여기에 항생제를 뿌리면, 약에 약한 절대다수는 죽고 견디는 성질을 가졌던 소수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이들이 번식해 다음 세대를 채우면, 집단 전체에서 내성을 가진 비율이 올라간다. 항생제를 반복해 쓸수록 이 걸러내기가 되풀이되어 내성균이 다수가 된다.
핵심은 순서다. 변이가 먼저 존재했고, 항생제는 그 변이 중 유리한 것을 골라냈을 뿐이다. '필요해서 생긴' 게 아니라 '이미 있던 것 중 살아남은' 것이다. 이 두 단계 — 다양한 변이, 그리고 그중 특정한 것만 남기는 선택압 — 가 바로 자연선택의 뼈대다. 세균은 세대가 몇 시간~며칠로 짧아 이 과정이 몇 년 안에 눈에 보이므로, 오랜 진화의 원리를 사람이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드문 창이 된다.
이 현상을 다루는 학문은 무엇인가?
진화생물학(evolutionary biology)은 생물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고, 지금의 다양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중심에 자연선택이 있다 — '변이가 있고, 그 변이가 자손에게 전해지며, 어떤 변이는 살아남아 번식에 더 유리하다'는 세 조건이 갖춰지면 집단은 세대를 거치며 변한다.
진화생물학은 화석으로 과거를 읽는 고생물학, 유전자로 변화를 추적하는 집단유전학, 그리고 항생제 내성처럼 눈앞에서 벌어지는 진화를 실험하는 실험진화학을 아우른다. '진화는 옛날 이야기'라는 인상과 달리, 이 학문의 상당 부분은 지금도 일어나는 변화를 다룬다. 의학·농업·생태 보전이 모두 이 원리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진화생물학은 생명과학 전체를 꿰는 뼈대로 여겨진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무엇과 이어지나?
통합과학2의 변화와 다양성 단원에 나오는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가 정확히 이 글의 교과 앵커다. 교과서는 변이가 자연선택을 통해 생물다양성을 만든다고 정리하는데 (변이와 자연선택 — 진화가 일어나는 두 개의 톱니바퀴에서 이 두 톱니를 다뤘다), 항생제 내성은 그 추상적 원리가 병원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구체적 장면이다.
'변이가 먼저 있고 선택이 나중에 걸러낸다'는 순서를 정확히 잡는 것이 이 단원의 핵심이자 가장 많이 헷갈리는 지점이다. 그리고 콜레라·결핵 같은 감염병의 확산을 데이터로 추적하는 문제와도 이어진다 (역학 — 콜레라 지도 한 장이 시작한 학문 참고). 내성균의 확산은 진화의 문제이자 곧 공중보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이걸 어떻게 배우나?
생명과학과·생물학과에서 진화생물학은 기초 필수 과목으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집단 안에서 유전자 빈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수식으로 다루는 집단유전학이 이론적 축이라 확률·통계가 함께 붙고, DNA 서열을 비교해 생물 사이의 유연관계를 그리는 계통학, 실제 미생물로 진화를 재현하는 실험진화 같은 실습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유전체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쌓이면서 계산 능력이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세부 교과·연구실 구성은 대학마다 다르다.)
여기서 뻗어 나갈 탐구 질문 3가지
- 항생제를 '증상이 나아졌다고 중간에 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
- 내성이 생기는 게 자연선택의 필연이라면, 우리는 항생제를 어떻게 써야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 '항생제 사용 관리'는 무엇을 조절하는 걸까?
- 세균의 진화는 몇 년이면 보이는데 코끼리의 진화는 왜 안 보일까? '세대 길이'가 관찰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보자.
한 줄 요약
세균은 약에 맞서 변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있던 변이 중 유리한 것이 걸러져 살아남는다 — 항생제 내성은 자연선택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는 창이다.
'진화'를 시험용 개념으로만 외우지 않고 병원·농장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로 다시 보면, 자연계열 탐구의 결이 깊어진다. TimeLevelUp으로 이런 교과–학문의 연결을 기록해 두면, 그것을 세특 탐구로 잇는 설계는 생기부레벨업의 1:1 상담이 함께 짚어 준다.

